재단소개

이사장 소개
 

1962년
1962년, 소련의 후루시초프가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만들기로 카스트로와 합의를 하고, 군함으로 미사일을 싣고 쿠바를 향해 카리브해를 항해하고 있을 때였다. 미국의 젊은 대통령 케네디는 소련측에 함정을 즉시 돌릴 것 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소련측의 거부로 끝내 3차 세계대전으로 번질 일촉즉발의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온 세계가 긴장하고 있을 바로 그 때, 세기의 노 지성 버트란트 러셀 경이 극적인 성명을 냈다. 
런던에서 1인 시위를 하며 후루시쵸프와 케네디 두 사람에게 보낸 성명의 내용은 “너희가 싸움을 하면 전 인류가 멸망할 텐데, 전 인류를 멸망시켜도 좋다는 허락은 어디서 누구에게 받았는가?, 무조건 이 순간 바로 멈춰라, 둘 다 핵무장을 해체하라, 너희가 누구에게 전 인류를 죽일 수 있는 권리를 이양 받았느냐...? 그 같은 망상은 버리라는 것이었다.
홍일식 이사장이 '문화영토'의 개념을 처음 발상하게 된 것도 러셀 경의 이 성명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이 지구상에 언제, 그 누구가 국경이라는 선 을 긋고 여기에는 너만 살아라, 저기에는 네가 살아라 했는가? 하는 홍일식 이사장의 발상이 문화영토론이라는 고집스런 사념(思念)을 사로잡는 단초가 되었다.

1978년
홍일식 이사장, 외국여행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 약 두 달 간에 걸친 구미여 행을 마치고 귀로에 일본에 들렸을 때, 마치 내 나라에 다 온 것처럼 친숙한 느낌을 받다. 서양에서 만났던 서구문명의 이질감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 격의 문화적 유대감, 동질감, 친밀감, 일체감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 국경이라는 국제법상의 주권적 지리영토가 갖는 배타성을 넘어 우리 민족의 삶과 체취가 중첩되는 '문화영토의 상(像)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다.

1981년 4월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안에 영토문제연구실을 발족, 이때부터 문화 영토의 개념과 이론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학술회의 개최. 이 학술회의 |개회식에서 민연 소장인 홍일식 이사장이 새로운 문화영토의 개념과 그 | 전망'이라는 제하의 개회사를 겸한 학술강연에 처음으로 '문화영 토론을 학 계에 제기.

1981년 5월 13일 
'영토개념의 새로운 인식' 게재(동아일보)

1983년 10월 30일 
민족문화연구소에서 학술지 영토문제연구를 창간하고, 창간사를 겸한 논 문 문화영토시대의 도래와 한국문화의 전망' 게재.

1985년 9월 
홍일식 이사장, 문화영토 관련 논문 '문화영토의 개념과 해외동포의 역할' 을 영토문제연구」 제2집에 게재하다. 이 논문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 최된 '제2차 해외한민족 회의'에서 발제강연한 것을 수정 보완하여 게재.

1986년 5월 
'문화영토시대의 도래와 한국문화의 전망' -영토문제연구 창간사를 수정 · 보완하여 발표(세계평화교수협의회 제 4차 종합학술회의 발표. 미국 LA).

1986년
홍일식 이사장, 계간 『현대문학 지에 '문화영토시대의 도래와 한국문화의 전망' 재 수정 · 보완하여 재 게재.

1987년 
홍일식 이사장, 단행본 문화영토시대의 민족문화 (국판 489면 서울: 육문 사 발간).

1989년 8월 5일 
홍일식 이사장, 미주 한국일보에 해외동포와 문화영토' 게재.

1993년 2월 1일
'문화영 토시대 새 지평을 열자' 게재(세계일보)

1995년 1월 1일 
홍일식 이사장, 무등일보의 신년특집 특별대담 '문화영 토시대 온다'라는 제 목의 인터뷰.

1995년 4월 22일 
일본의 함께하는 三田시민의 모임에서 '문화영토론과 동아세아'라는 제목 으로 강연.

2017년 4월 
홍일식 이사장, 단행본 문화대국으로 가는 길' 국판 509면 (범우사)출간.

2019년 4월 
사재를 출연하여 (재)문화영토연구원 설립.